16 충분히 좋은 것이 최고보다 낫습니다
일반적으로, 다음 사실을 깨닫고 나면 더 빠르게 나아가고 스트레스도 훨씬 덜 받게 됩니다. “최고”는 필요 없습니다. “충분히 좋은” 것이면 됩니다.
“최고”를 찾는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일을 수반합니다.
- 벤치마크에 집착하는 것
- 인플루언서의 생각에 신경 쓰기
- 새 릴리스 따라잡기
“충분히 좋은” 것을 찾는 일에는 다음이 포함됩니다:
- 바로 여러분이 끝내야 하는 일
- 여러분이 잘 아는 것
- 바로 여러분이 즐기는 것
되돌릴 수 있는 결정일수록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합니다.
16.1 왜 중요한가
이 깨달음은 무엇이 최고의 라이브러리인지, 최고의 강좌인지, 최고의 프레임워크인지를 묻는 초보자의 또 다른 질문에 답하다가 얻게 된 것입니다.
초보자의 문제는 이것들이 나쁜 질문이라는 사실조차 모른다는 것입니다.
초보자에게 부족한 것은 기술적 장점을 평가할 틀입니다:
- 초보자일 때는 “가장 큰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팔로워가 가장 많은 것, 사용자가 가장 많은 것, 친구들이 가장 많이 추천하는 것에 휩쓸립니다. 우리는 기술보다 사람에게 더 익숙하기 때문에, 증거가 아니라 사회적 증거를 따릅니다.
- 트레이드오프와 최첨단 작업에 대해 조금 더 안목이 생기면, “최고가 최고”가 됩니다. “가장 큰 것”이 실제로는 “최고”가 아닌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보게 됩니다. 때로는 모두의 마음을 사야 한다는 필요 때문에 “최소공배수”를 향해 가려는 경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모두의 요구를 지원하다 보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군더더기가 무질서하게 늘어납니다. 때로는 단지 실체보다 마케팅을 우선시했기 때문에 커지기도 합니다. 이런 일이 꽤 자주 일어나다 보니, 가장 큰 것이라면 무엇이든 불신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여전히 어떤 지표로든 객관적인 “최고”가 존재한다는 생각,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 그리고 그것이 최고이기 때문에 여러분이나 여러분의 회사가 “최고”를 써야 한다는 생각에 매달립니다.
- 전문가가 되어 갈수록, “최고의” 기술이 타당하지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이유로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리고 사람마다 우선순위와 처지가 달라서 “최고”를 여러분과 다르게 평가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추천은 “나에게 최고”가 되고, 동의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스스로 내린 선택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단 하나, 그 기술이 여러분이 사용하려는 목적에 충분히 좋은가 하는 것뿐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엔지니어링과 삶을 최대화 작업이 아니라 만족화 작업으로 바라보는 일을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최고”를 찾는 대신 “충분히 좋은” 것을 찾고 다음으로 넘어갈 때 더 많은 성공과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물론 “최고”를 찾는 것 자체가 여러분이 제공하는 가치의 전부라면 예외입니다. 예를 들어 전문 기술 리뷰어라면 말입니다).
16.2 “최고”를 추구하는 것의 문제점
우리는 무언가의 “최고”를 찾는 데 많은 시간을 들입니다. 최고의 학교. 최고의 직장. 최고의 집. 최고의 도시. 최고의 식당. 최고의 배우자. 최고의 프레임워크. 최고의 강의. 최고의 책. 최고의 배우들이 출연하는 최고의 영화.
최고를 갖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럭저럭 괜찮은” 것에 만족하며 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최고를 추구하는 데에는 몇 가지 숨은 비용이 따릅니다.
- 행복: 자신이 최고를 가졌는지 늘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불완전한 정보, 즉 리뷰에 쓰인 내용, 친구들이 해 주는 말, 마케팅이 내세우는 말을 바탕으로 결정을 내리고 무언가를 구매합니다. 최고를 찾아 헤맸는데 결국 두 번째로 좋은 것을 손에 넣었음을 깨닫는 것은 실망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결국 초록색 표시가 가장 많은 것을 찾으려고 긴 기능 체크리스트를 비교하게 됩니다. 그중 대부분은 필요하지도 않은 것입니다. 무언가를, 그것이 무엇이든 고르는 일조차 놓칠까 봐 두려운 마음 때문에 불안을 안겨 줍니다.
- 협력: 최고를 찾다 보면 여러분의 세계는 포지티브섬(positive-sum) 무한 게임이 아니라 제로섬(zero-sum) 유한 게임으로 바뀝니다. 이는 여러분의 세계관을 암처럼 좀먹습니다.
- 효율성: 이는 또한 터무니없이 비효율적입니다. 파레토 법칙의 따름정리는 무언가의 마지막 20%가 가장 비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늘 “최고”를 추구해야 한다면, 바로 그 부분을 위해 진땀을 흘려야 합니다. 최고를 추구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다만 그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은 비용을 치르게 된다는 점은 알아 두십시오.
- 주체성: 사람들은 “최고”가 무엇인지 대신 정의해 줌으로써 “최고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조종합니다. 누가 Foursquare에서 시장(Mayor)이 되고 싶어 합니까? 누가 YouTube에서 가장 많은 구독자를 얻으려고 경쟁할 수 있습니까? 어느 서비스 직원이 이달의 직원이 되겠습니까? 시스템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짜 지위를 부여하려고 만든 게임입니다. “충분히 좋은 것”을 추구하면 자신의 주체성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충분히 좋음’은, 글쎄요, 충분히 좋습니다. 무엇이 충분히 좋은지 스스로 정의하고, 그것을 얻었을 때 기뻐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그러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꾸준히 행복하고, 협력적이며, 생산적이고, 독립적인 사람이 될 것입니다.
저자 노트: 역사적으로 이 원칙을 훨씬 더 공격적으로 표현한 말이 있습니다. 바로 “Worse is Better”입니다. 이 말은 원래 소프트웨어 품질(실제 사용성 측면에서)이 기능이 많아진다고 해서 반드시 높아지지는 않는다는 생각을 표현하려고 리처드 가브리엘이 처음 만들었습니다(에세이 전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표현의 모순적인 성격 때문에 “나쁜 것”이 모든 상황에서 바람직하다는 뜻으로 읽힌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표현 대신 “충분히 좋음”이라는 표현을 쓰기로 했습니다.
16.3 거짓 확신: 정확도 대 정밀도
“정확하게 틀리는 것보다 대략적으로라도 맞는 편이 낫습니다.” - John Maynard Keynes
“최고”를 추구하는 것과 아주 가까운 사촌 격인 것이 정확도 대신 더 높은 정밀도에 감탄하는 것입니다. 정밀도가 높아지면 더 확신하게 되지만, 실제로 더 옳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얼마나 옳은지를 측정하는 것은 오직 정확도뿐입니다.
차이를 기억하십시오:
그림 「Accuracy vs Precision」은 저작권자의 별도 허락이 필요하거나 출처가 확인되지 않아 번역판에 싣지 않습니다. 원문 사이트에서 그림 보기
정확하게 틀리기보다는 대략적으로라도 옳기를 추구하십시오.
정밀함의 매혹적인 유혹은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소수점 자릿수, 잦은 업데이트, 복잡한 대상을 단 하나의 축으로 비교하는 것, 다수의 합의, 화려한 자격을 갖춘 전문가 등이 그렇습니다.
다음과 같은 것을 볼 때마다:
- 주가 변동을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전하는 금융 뉴스 매체(통찰을 제공하는 것보다 정밀해 보이는 데 더 신경 쓰는 경우)
- 일 단위, 심지어 시간 단위 지표를 근거로 결과물의 성패를 판단하는 창업자들(특히 장기적이거나 확률적인 결과가 걸려 있을 때)
- 단일 지표 벤치마크(“제 프레임워크는 $POPULAR_FRAMEWORK보다 100배 빠릅니다!”)
- “군중의 지혜”를 객관적 진실의 대용물로 삼는 의사결정자들 (너무나 자주, 군중은 대개 소수 엘리트 집단의 의견이나 그들이 공유하는 사실을 반영할 뿐입니다)
- 사람들이 이름 뒤에 세 글자가 넘는 직함을 내세웁니다 (사실과 논증의 힘으로 여러분의 두뇌를 다시 켜게 하기보다는, 자격을 내세워 두뇌를 꺼 버리게 만듭니다)
매우 경계하십시오. 정밀한 사람들이 항상 틀린다는 뜻은 아닙니다. 말 그대로, 더 정밀하다는 것은 더 정확한지 여부와 거의 관계가 없다는 뜻입니다. 더 정확해지는 것보다 더 정밀해지는 것이 언제나 더 쉽습니다. 하나는 더 많은 자신감을 낳습니다. 다른 하나는 더 많은 결과를 낳습니다. 현명하게 선택하십시오.
데이터는 쉽게 얻을 수 있을수록 대체로 가치가 낮습니다. 상대적으로 넘쳐나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도 쓸모없는 사실을 지키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인간에게 좋은 소식입니다. 모든 것이 빅데이터로 움직이는 세상에서도 판단력, 통찰력, 그리고 근본적인 제1원리 사고(장 17)가 설 자리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엘스버그 역설이라고 알려진, 모호함과 불확실성을 싫어하는 성향도 타고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손에 들어온 데이터라면 그 가치가 어떻든 매달리게 됩니다.
거짓 정밀성(False Precision)은 단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해롭습니다. 거짓 확신(False Confidence)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Adam Robinson이 『Tribe of Mentors』에서 들려준 이야기를 그대로 옮기는 것이 가장 좋겠습니다:
“1974년, 노벨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과 동료였던 세계적인 심리학자 폴 슬로빅(Paul Slovic)은 정보가 의사 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 연구는 이 나라의 모든 경영대학원에서 가르쳐야 합니다. 슬로빅은 프로 경마 핸디캐퍼 여덟 명을 모아 놓고”여러분이 경마 우승마를 얼마나 잘 예측하는지 보고 싶습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이 핸디캐퍼들은 모두 오직 도박 실력만으로 생계를 꾸려 온 노련한 전문가들이었습니다.
슬로빅은 이 테스트가 네 차례 연속된 라운드에 걸쳐 경마 40개 경주의 결과를 예측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첫 번째 라운드에서는 각 도박사에게 각 말에 대해 그가 원하는 다섯 가지 정보가 주어지며, 이 정보는 핸디캐퍼마다 다를 것이었습니다. 어떤 핸디캐퍼는 기수의 경력 연수를 상위 다섯 가지 변수 중 하나로 원할 수 있는 반면, 다른 핸디캐퍼는 그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대신 각 말이 지난 1년 동안 기록한 최고 속도나 그 밖의 무언가를 원할 수도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핸디캐퍼들에게 각 경주의 우승마를 예측하게 했을 뿐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예측을 얼마나 확신하는지도 밝히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각 경주에는 평균 열 마리의 말이 출전했으므로, 순전히 운에 맡겨 무작위로 찍더라도 각 핸디캐퍼는 10퍼센트의 확률로 맞힐 것이고, 무작위로 찍었을 때의 확신도 10퍼센트일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라운드에서 단 다섯 가지 정보만으로 핸디캐퍼들의 정확도는 17퍼센트였습니다. 이는 꽤 좋은 수치로, 정보를 하나도 받지 않았을 때 시작점이었던 10퍼센트 확률보다 70퍼센트 더 나은 결과입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그들의 확신도는 19퍼센트였습니다. 마땅히 가져야 했던 확신의 정도와 거의 정확히 일치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측에서 17퍼센트의 정확도와 19퍼센트의 확신도를 보였습니다.
두 번째 라운드에서는 열 가지 정보가 주어졌습니다. 세 번째 라운드에서는 20가지 정보가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이자 마지막 라운드에서는 40가지 정보가 주어졌습니다. 이는 처음에 받은 다섯 가지 정보보다 훨씬 많은 양입니다. 놀랍게도 그들의 정확도는 17퍼센트에서 제자리걸음이었습니다. 35가지 정보가 추가되었는데도 정확도는 전혀 높아지지 않았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확신은 거의 두 배인 34퍼센트로 뛰었습니다! 즉, 추가 정보는 그들을 조금도 더 정확하게 만들지 못했지만 훨씬 더 확신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베팅 규모를 늘렸을 것이고, 결국 돈을 잃었을 것입니다.
일정한 최소량을 넘어서면, 추가 정보는 — 그것을 얻는 데 드는 상당한 비용과 지연은 차치하더라도 — 심리학자들이 “확증 편향”이라고 부르는 것을 부추길 뿐입니다. 우리는 처음의 평가나 결론과 상충하는 정보를 얻으면 편의적으로 무시하거나 일축하는 반면, 처음의 결정을 뒷받침하는 정보는 우리의 결론이 옳았다는 확신을 점점 더 키웁니다.”
이 이야기의 전체적인 교훈은 처음에 이야기한 것과 같습니다. “충분히 좋은” 정보를 추구하고, 기술에 베팅(장 24)할 때나 회사와 사람에게 베팅할 때 적절한 확신을 가지십시오.
저자 노트: 이 원칙의 이름은 분명히 리튬 이온 배터리 발명가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전자 기기의 편리함 중 상당 부분이 그분 덕분입니다. 바로 이름마저 딱 들어맞는 John B. Goodenough입니다.